오늘은 주님봉헌축일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사내아이의 경우 태어난지 40일 되는 날 정결례를 행하였습니다. 사내아이를 낳으면 7일간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33일 간은 기도와 희생과 봉사를 하면서 전례에 참여하지 않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40일 또는 80일 후(여자 아이의 경우 사내아이의 두배의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아이를 성전에 봉헌하고 정결 예식을 행하였습니다. (레위기 12,1-5)
이때 성모님은 시메온과 한나라는 예언자를 만납니다. 두 사람은 메시아를 뵙게 될 것이라는 성령의 계시를 받고, 의롭게 살아가며 그날을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드린 시메온이 마리아에게 한 말이 가슴아프게 들려옵니다. 그는 성모님이 당할 시련과 고통의 일생을 이렇게 예언합니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도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복음 2,35)
오늘은 성모 마리아의 삶처럼 희생과 포기,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봉헌자(수도자)의 날이기도 합니다. 봉헌자(수도자)란 우리 시대에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기 위하여 온몸으로 희생하여 살아가는 증거자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 ‘자신의 가장 심오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마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밭에 묻힌 보물을 사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마태 13,44)
이들은 이 보물을 얻기 위해 성모님처럼 칼에 꿰찔리는 아픔과 포기, 용서와 번뇌의 희생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 아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뜻을 온몸으로 실천하며 따르고 있습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이 하루는 하인이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에 하인은 물통에 나뭇가지를 하나씩 넣었습니다. 그래서 성인은 하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하인은 “도련님, 나뭇토막을 넣어야 물이 요동치지 않습니다. 나뭇가지를 넣지 않으면 물이 마음대로 요동쳐서 끝에가면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습니다.”고 답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 절망으로 우리 마음이 요동치고 출렁임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물이 넘쳐흘러 결국 마음의 샘이 메마르게 됩니다. 이때 십자가라는 나뭇토막을 우리 마음에 넣는다면 우리 마음의 물통은 안정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당하는 시련과 유혹을 은총의 십자가로 받아들이고 부활로 나아가야 합니다.
충북 음성의 꽃동네 병원에 신상현 야고보라는 수도자가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가톨릭의대를 졸업하여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상현 수사는 의사로서의 풍요로운 삶을 포기하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십지가를 지고 희생과 포기, 순명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를 우리는 꽃동네의 프란치스코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부릅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작지만 나름의 희생과 순명을 하느님께 바친다면,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로, 하늘나라의 공동상속자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입니다.
(2025년 2월 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