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요한 2.1-11)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표징을 행하셨습니다. 이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7가자 표징 중 첫번째로 행하신 것입니다. 표징(sign)이란 기적을 뜻하는 요한복음 특유의 용어로서, “영광”을 드러내시는 예수님과 그를 보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이루어짐을 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성모님은 이를 무관심하게 넘기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유다인의 관습에 잔치에 포도주가 없으면 사람들은 제대로 대접받지 않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포도주는 잔치에서 불가결한 접대 풍습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손님의 입장에서 그 집에 초대받아 간 것이므로 포도주가 떨어진지 알 수 없었겠지만, 타인의 입장에서 잔치집을 본 것이 아니라 관심과 배려심이 넘치는 마음으로 관찰했기에 이를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모님은 혼주의 낭패함을 묵과하며 넘어가시지 않고 아직 때가 되지않았다는 예수님의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고 일꾼들에게 이르십니다. 예수님은 물독을 물로 가득 채워서 이를 과방장에게 갖다주라고 명하십니다. 과방장이 이를 맛볼 때 이미 물은 포도주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성모님의 배려심과 이웃에 대한 공감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우리가 음악회에 가게 되면 오케스트라가 다양한 음을 내면서도 이들 음이 어울어져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화음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금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등 수많은 악기가 어울어져 우리에게 조화롭고 감동적인 음악을 선사합니다. 그런데 이들 악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비어있는 공간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비어있는 공간이 울림공간의 역할를 함으로써 조화로운 소리를 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이웃, 나아가서는 공동체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빈 마음을 통하여 남과 공감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이웃에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비어있음으로서 가난한 자, 고통받는 자들과 공감하고 이들에게 연민의 정을 갖게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비움이 있어야 마음의 같은 음역대를 조성하여 공감의 울림대를 만들고 조화롭고 일치된 공동체 생활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이 비어있지 않음으로서 소외받고 외로운 사람들과 공감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비어있어야 할 마음의 공간을 욕심, 이기심, 미움, 허세, 질투심이 채우고 있어 남과 화합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심이 없다면 그 공동체는 전혀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없고 삐걱거리기만 할 것입니다. 천국이란 무한대의 공감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어있는 마음은 결핍이 아니라 여유에서 옵니다. 

오늘 물이 포도주로 변한 이적사화(異蹟史話)가 우리에게 상징하는 바는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냉정하고 차가운 마음에서 따뜻하고 배려깊은 마음으로, 상처에서 치유와 화해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이기심에서 이타심으로 변화함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것은 하느님과 이 세상이 온전한 일치를 이루고, 그것이 참 기쁨이 되도록 예수님께서이 세상에 파견되셨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요한복음이 기록한 예수님의 7가지 표징은 오천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표징(요한 6,1-15), 벳자타 못가의 중풍병자를 고치심(5,1-18), 태생 소경을 고치심(9,1-12) 등과 같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과 공감하고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던 이스라엘의 서민들에게 연민의 정을 가지셨기 때문에 행하신 것들입니다. 

(2025.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