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한민국 천주교 신앙·정의수호 사도회에서 대표를 맡아 봉사하고 있는 김원율 안드레아입니다. 오늘은 류장선 베드로 신부님이 강론을 하시기로 되어있었으나 마침 평신도주일이라하여 제가 신부님을 대신하여 강론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비록 미흡하지만 경청하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독서말씀에서 사렙타의 과부이야기, 복음에서는 빈곤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농경사회에서 남자의 노동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며 과부는 혼자 힘으로 밭을 갈고 추수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홀로남은 과부는 남의 밭에서 추수하고 남은 잔여물을 주어서 주린 배를 채웠으며 온갖 천대와 멸시를 맏았습니다. 또한 2천년전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여성은 사회적으로 남편의 소유물로 취급되었으며, 남편에 의해 끊임없이 폭언과 구타를 당하였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심지어 밥을 태었다는 이유로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았고, 이처럼 가정에서 쫓겨난 여인은 과부와 같은 운명에 처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코 복음 10장 9절에서 들려주신 ‘하느님이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고 하신 말씀은 2천년전 이스라엘에 울려퍼진 여성해방의 복음이었으며 오늘날 그리스도교 국가의 여성들은 세계에서 가장 진전된 여성의 권리를 누리고 있습니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약 3,300년전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이스라엘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예언자 모세를 보내셨지만, 그들은 40년간 풀한포기, 나무한그루 없는 삭막한 광야를 헤메면서 끊임없이 목마름과 굶주림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사막에서 갈증으로 고통을 겪었던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사건은 오늘날 참된 해방과 풍요를 갈구하는 우리가 겪고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고통과 갈증을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고통과 갈증의 의미를 정확히 깨닫지 못합니다. 이제 곧 있으면 대림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이 기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아기예수를 맞이할 사랑과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2027년 서울세계청년대회를 맞아 평화의 사도이신 교황님을 맞이할 생각에 마음은 부불어오르고 있으나 오늘날 한국의 청년들은 치열한 입시경쟁과 취업난, 경제난 등 마음속의 삭막한 광야와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제가 어렸던 시절, 젊은 시절로 돌아가 한번 전개해봅시다. 저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당시 전쟁 후 부산시민 역시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산 중턱에는 하꼬방집, 판자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사람들은 그날그날 밥먹기도 힘겨웠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부자들은 높은 담위에 뾰족한 유리조각을 박은 방범벽을 갖추었고 사람도 먹지 못하는 고기를 부잣집 개들은 먹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저를 슬프게 하였고 분노하게 하였습니다. ‘부잣집 개팔자’가 사람보다 낫다는 자조섞인 비아냥도 들리곤 하였습니다.
이후 60년대-70년대 대학가는 삼선개헌 반대, 유신반대 등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시위와 소요사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도 데모대에 휩쓸려 천지모르고 나돌아다녔습니다. 그때 선친께서 박정희 대통령은 애국자라고 이르셨는데 그 말씀은 제 귓전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당시 박정희라는 이름 석자는 저에게는 그저 권력에 미친 독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마치고 군대복무중인 1972년 유신에 대한 국민투표가 행해졌는데 부대장이 기표소 앞에 버티고서서 감시하였습니다. 저희 부대에서 유신반대가 두표 나왔었는데 한표는 투표 당일 제대하는 조병장이라는 친구가 찍었고 한표는 제가 찍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조병장은 그날자로 더플백을 매고 병영을 떠났습니다. 유신투표 얼마후 부대회식이 있었는데 부대장이 저에게 술잔을 던지면서 고함을 질렀습니다. “김병장 이XX, 내가 보고있는데도 감히 반대표를 던져!”
70년대 그리고 80년대 어둡고 우울한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노래로 영화 고래사냥의 주제가인 ‘고래사냥’이라는 노래가 유행했었습니다. 여러분께서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소절 불러보겠습니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 있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이 노래에는 염세적이며 비관적인 분위기가 깔려있고 당시 억압적인 시대상황에서 청년들이 느꼈던 좌절감이 배여있습니다. 그리고 ‘고래’는 바로 이러한 현실에서 그들이 마음속에 간직한 꿈을 뜻하였습니다. 영화에는 소외되고 무기력하며 인생에서의 패배자, loser같은 인물이 다수 등장합니다.
새월은 흘렀습니다. 저는 그토록 미워하던 박정희 대통령이 바로 대한민국을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이끈 영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시 YS, DJ 민주화의 거두라는 인간들은 박대통령이 국토의 대동맥이라는 고속도로를 뚫을 때 ‘부자들 주말에 놀러다니기 좋으라고 막대한 혈세를 써서 고속도로 만드느냐?”고 하면서 고속도로 건설현장에 드러누워 반대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 그뒤에 숨겨져 있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인식하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현상에 일희일비하면 말할 수 없이 표피적이고 천박한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도 먹고살게 되고, 입에 무언가 들어간 다음에 하는 것입니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 믿어 천당가시오”가 복음입니까? 아닐 겁니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여기 쌀이 있다”라는 말이 복음입니다.
제가 막연하게 어릴 때 개새끼가 고기먹는 것을 보고 분노하였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정의의 감정이 아니라 가진 자에 대한 시기심과 적개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고 지금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 고기보다 보리밥을 찾아 먹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반려견은 그 집안의 가족의 일원입니다. 그러니 다른 가족이 고기를 먹는다면 개도 고기를 먹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11월 대림시기와 12월 성탄시기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병자나 고아들을 사랑하고 마음으로 품어야 합니다. 대천사 회원들은 지난 9월 23일 꽃동네에서 피정을 하였습니다. 이곳에는 오웅진 신부님, 꽃동네 병원장 신상현 수사님을 비롯한 많은 수도자들이 4,000명에 달하는 고아, 과부, 행려병자 들을 수용하여 돌보고 있습니다. 병자들의 쉼터인 자애(慈愛)의 집에는 불행했던 한 여인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여인은 2천년전의 이스라엘 여성들처럼 남편으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결혼 후에 끝없는 외도와 구타로 이 여인을 구박하였고 시어머니, 시아버지로부터도 며느리로서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사소한 일로 심하게 얻어맞아 이 여인의 한 눈은 실명하게 됩니다. 어느 날 이 여인은 남편으로부터 AIDS를 옮겨 받아 병자가 되었고 시댁에서는 이 여인을 내쫓았습니다. 여인은 친정으로 돌아가지만 친정에서도 이 여인을 따뜻하게 보듬기보다는 몹쓸 병에 걸렸다고 하면서 매정하게 내칩니다. 그리하여 서울역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는 이 여인에게 몹쓸 짓을 하고자 하는 남자들이 있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 여인은 끊임없이 고함과 자해에 가까운 난동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평생을 불행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이 여인에게 어느날 구원의 손길이 미쳤습니다. 꽃동네의 수도자들에 의하여 꽃동네, 자애의 집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태어나서 한번도 사랑을 받지못했던 여인은 처음에는 사랑의 손길을 거부합니다. “사랑, 난 그런 것 몰라”라고 하면서 이 여인은 식판을 던져버립니다.
그러나 끝없이 수녀님들이 사랑의 손길을 내밀며 밥을 떠먹여 주는 등 정성을 다하자 차츰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이 무엇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불행한 이 여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따뜻한 눈길, 배려, 사랑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이 여인은 180도 달라집니다. 스스로 다른 병자들에게 손길을 내밀어 지체가 부자유한 병자의 밥을 떠먹여 주고 그들을 씻기며 온갖 사랑과 정성을 다합니다. 이 여인은 죽으면서 한쪽 남은 안구나마 실명한 사람의 빛이 되겠다고 하면서 기증하고 자신의 시신을 연구용으로 대학병원에 기증하였습니다. 평생 사랑이라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던 이 여인은 꽃동네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죽어갔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사랑받는 사람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 이제 고래사냥이라는 영화이야기로 돌아가봅시다. 이 영화의 주인공 병태는 왜소하고 소심하며 그렇다고 특출하게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닌, 요새 젊은세대 말로 킹카하곤 거리가 먼 학생입니다. 그는 짝사랑하던 미란이란 여학생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무참하게 거절당하고 거지 왕초 민우를 만나 같이 밤길을 방황하게 됩니다. 이때 병태는 밤거리의 여인, 춘자라는 벙어리 여인을 만나게 되고 그 여자에 대하여 연민을 품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병태와 민우는 사창가를 장악하고 있던 폭력배를 따돌리고 춘자를 홀어머니가 있는 고향으로 데려다주게 됩니다. 그리고 사창가의 폭력배에 의하여 납치되면서 그 충격으로 실어증을 앓던 춘자는 다시 말을 되찾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지게 됩니다. 병태에게 있어 그의 꿈, 이상인 ‘고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다름아닌 비참한 운명에 처한 한 여인에 대한 동정과 연민, 사랑이었습니다.
이제 얼마 있으면 우리는 아기예수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기예수는 우리에게 사랑을 주러 오셨습니다. 대천사 여러분도 아기예수를 맞이하여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 아기예수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도록 합시다. 꽃동네의 수도자, 고래사냥에 나오는 병태와 민우처럼 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비참한 운명에 처해진 사람들에 대하여 연민과 사랑으로 보듬어줍시다. 그때 메시아로 오신 아기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더할 수 없는 기쁨과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은 하느님의 나라는 성령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평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 우리도 떠나봅시다! 동해바다에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보며 우리의 희망이신 아기예수를 만나러 떠납시다. 감사합니다.
(2024. 11. 10. 대천사 11월 미사에서 김원율 안드레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