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희 쁘레시디움은 임연재 스데파노, 강성일 요한, 두분 형제님이 선서를 마침으로써 단원수가 12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는 1년전의 어려웠던 때와 비교하면 거의 기적이라고 생각됩니다. 5명정도의 단원으로 겨우 4간부를 임명하는 수준에 불과한 단원수를 늘리기 위해 작년 봄 한달동안 주일에 신자들에게 레지오를 소개하는 팜프렛을 성전 입구에서 나눠주며 신입단원을 구했지만 한명도 단원수를 늘리지 못했습니다. 예비신자들 마지막 교리시간에 찾아가서 레지오 마리애 즉 성모님의 군대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으나 역시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전에 젊은 단원도 2명정도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탈퇴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주 회합에 참석하는 것이 자신의 영신생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그리고 작년 가을이후 갑자기 단원들이 늘기 시작하여 이제는 12명을 채웠습니다. 저는 성모님께서 보내주신 이 단원들을 놓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훈화를 제가 쓰고 2주에 한번 주회시간에 읽어주어 새로 입단한 단원들과 성모님의 군사로서의 동행(同行)을 계속 이어나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은 훈화 중에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과연 이들에게 훈화를 할 정도로 성덕(聖德)이 있는가, 아니면 내 자신이 지식이 가득 차고, 성령의 열매가 충만한, 다른 사람을 연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르하르트 로핑크라는 독일의 영성신학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에 맞닥뜨렸을 때, 자기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인 것처럼 연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죽음은 우리를 진실되게 하며 지금까지 쌓아올린 자기기만과 환상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끝없이 고통스러운 일이며 자신을 숨겨온 가면들이 벗겨지게 될 것이다.’ 왜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일까요? 다음의 일화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어느 수도원에서 한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에 대하여 취해야 할 첫 번째 태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제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몸과 마음,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스승은 “틀렸다. 우리가 하느님에 대하여 취해야 할 첫 번째 태도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늘 불안해하면서 하느님의 사랑보다 훨씬 못한 재화, 권세, 명예와 같은 세상의 온갖 가치를 얻기 위하여 안달합니다. 이러한 허망한 것들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사람의 존경과 신뢰를 얻게 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온갖 거짓과 탐욕, 분노와 증오심의 노예가 되어 삶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학자의 말대로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며 일생을 살아갑니다. 그결과 자신의 참된 가치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의 참모습을 찾지 못하고 오직 남에게 비쳐지는 모습, ‘나는 유능한가’, ‘나는 존경받고 있는가’라는 타인의 머리속에 각인되는 자신의 거짓 자화상과 환상만을 좇고 이러한 것에 힘과 정력을 낭비합니다.
오늘 우리는 현세의 메시아, 지상의 왕국이 구원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고 예수님을 환영하다가 돌변하는 예루살렘 백성처럼 세상의 모든 가치, 재물과 권력이 평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믿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들이 종국에는 예루살렘 백성들처럼 파멸에 이르게 될지 그 누가 알겠습니까?
하루는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이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습니다. 한 천사가 말하였습니다. “인간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이군요.” 한 천사가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하느님의 위대한 창조물인 인간을 어리석다고 하십니까?” 첫 번째 천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인간이 어리석은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 인간은 자신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다음으로 그들은 죽을 때 아무 것도 갖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잊고 모든 것을 다 가지고자 합니다. 세번째로 그들은 백년을 살지 못하면서 천년, 만년을 살 것처럼 생각하고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내가 아닌 ‘그 무엇’이 되기 위하여 무자비하게 경쟁하고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못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이야 말로 진정한 내 모습을 보는 순간입니다. 자신의 본성을 보는 순간 우리는 모든 것, 명예와 권세에 대한 욕망을 내려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참으로 소중한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로 인하여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내 자신이 아닌 ‘그 무엇’이 되기 위하여 무지와 무명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고통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선 아름다우시고 선하시며 진리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 간구합시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은총을 내려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며 현실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덧붙이면서 오늘 입단하신 두분 형제님께 진심으로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 (필리피서 2,15)
2024. 9. 15. 은총의 모후 Pr. 주회합에서 김원율 안드레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