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입니다.

(Our citizenship is in heaven)

 

오늘 성경을 읽다가 한 구절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중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입니다.’(필리피서 3,20)라는 구절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강론 모음집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50년대 자유당 정부 시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으며,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습니다. 사람들은 미국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여 심지어 자유당 정부의 장관보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더 부러워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늘나라의 시민’은 어떨 가요?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늘나라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미국 시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축복이며 영원한 기쁨입니다.”

 

50년대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 미국은 꿈에서나 갈 수 있는 나라였고, 어쩌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초콜릿이라도 맛 본 아이들은 기막히게 좋아했습니다. 당시 미제는 최상품의 대명사였고 심지어 우스개 이야기로 ‘미제는 X도 좋다’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도 경제가 성장하여 사람들은 미국 못지않은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필리피서의 저자인 바오로 사도는 당시 로마 시민권자였으며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습니다. 필리피서 3장에도 기술되어 있습니다만, 바오로 사도는 이스라엘 민족으로서는 벤야민 지파출신(사울왕의 지파)이며,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누구보다 흠없이 율법을 지킨 바리사이였고 당대 최고의 석학 가말리엘 라비의 제자였습니다. 그는 유다교의 지도자로서 교회를 박해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선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비유로 말하자면 금수저로서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하바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쯤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 인생이 180도 달라집니다. 그는 모든 기득권을 버렸습니다. 그는 스스로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당대의 제국인 로마의 시민, 바리사이와 같은 지위는 한갓 쓰레기로 여겼으며 그리스도의 사도,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일생을 그린 어떤 영화를 보면 그녀는 매우 아름답고 순결한 여인이었음에도 당시 바리사이들로부터 오히려 행실이 나쁜 여인으로 갖은 모욕과 괄시를 받습니다. 그녀는 순결하였으며 율법학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자 그들이 적반하장 격으로 마리아 막달레나를 간음한 여인, 죄인으로 몰았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 시몬의 집에 초청받아 가셨을 때 마리아 막달레나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당시 시몬은 막달레나를 죄인으로 여겨 집에서 내 치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마리아를 가까이 부르십니다. 이에 마리아가 예수님께 다가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리자, 예수님은 한없이 자애로운 눈길로 막달레나를 응시하면서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십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로마의 한 장군으로부터 구애를 받습니다. 이 로마의 장군은 신실한 사람이었으며 마리아를 마음으로부터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정실로 삼아 로마에 같이 가서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여인은 남편의 소유물에 불과했습니다. 일부 극소수의 상류층 여인을 제외하고 그녀들이 받은 천대와 멸시, 고난과 궁핍함은 아마 지옥과 같은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의 왕조차도 그 앞에서 움츠리는, 당시 바다 끝까지 지배하였던 세계 최강 제국의 장군의 부인이 된다는 것은 부엌의 하녀에서 왕비가 되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능가하는 신분의 상승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마리아 막달레나는 자신은 다른 것을 원한다고 하면서 이 장군의 청을 거절합니다. 로마의 장군은 마리아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도록 기원하겠다며 말을 타고 마리아를 떠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로마의 권력자의 부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였고 궁극에는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제자 중 예수님의 수난현장에 동참하였고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 되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사도 중의 사도’라고 칭하였고 어떤 신학자는 그녀를 가리켜 ‘기독교(Christianity)의 창시자’라고까지 칭송하였습니다. 다만, 마리아의 뛰어난 사도행적은 남성 중심의 유다 사회의 전통으로 인하여 불행히도 사도행전 등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써 예수님의 가르침을 후대에 전하였고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예수님의 영적인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영광과 명성은 아침에 일어나면 덧없이 사라지는 아지랑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는 영광스러운 길보다는 세상이 주는 권력과 명예를 좇으며 일생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필리피서 2,14-16)

 

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하십시오. 그리하여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그러면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거나 헛되이 애쓴 것이 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