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품에 오르신 요한 23세 교황님께서 1963년 발표하신 회칙 ‘지상(地上)의 평화(平和)’서두에서 성직자와 신자들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선의의 모든 사람들에게 회칙을 보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의의 모든 사람들이란 사물을 하느님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자신의 시각,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서 회칙을 읽고 이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선의의 사람들이 아닐 것입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대하여 ‘선의의 입장’이 아닌 자신의 입장에 따라 교황님을 민주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 좌파 또는 우파라고 평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황님은 그러나 한마디로 민주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아닌 천주주의자(天主主義者)이십니다.

 

존경하는 교회의 목자이신 이한택 주교님께서 추천하신 교황님의 영성에 관한 책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신앙생활의 핵심’이라는 책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신앙생활의 중심은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여야 한다고 우리에게 일깨워 주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로지 하느님을 알려주시는 분으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책 24쪽) 성령의 첫 번째 은혜인 지혜는 ‘이 세상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은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시기심, 미움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책 133쪽)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신앙생활의 핵심’에서 교황님은 성사생활과 성령의 은혜에 대하여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성사생활은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나오는 빛입니다. 세례성사의 은총으로 우리는 세상을 자신의 눈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게 되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대화의 표현방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실제로’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129쪽)

 

교황님은 어디까지나 천주주의자이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책에서 우리 신자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에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고는 모든 선의 근원이 하느님이심을 깨닫지 못합니다. 스스로가 의로움의 근원이 되려고 하면 주님과 다른 이들에게서 멀어져 자신 안에 홀로 갇혀 그들이 하는 일은 물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처럼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책 27쪽)

 

교황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의 중심에 두어야 하며 자기 자신을 판단의 중심에 놓아서는 안 됩니다.

 

또한 교황님은 성체성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성체성사는 우리가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행동을 우리 편에서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성체성사는 바로 그리스도의 행위입니다.”(94쪽)

 

2014년 1월 수원교구의 어느 성당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님들은 교황님의 어록 ‘좋은 신자들은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라는 문구를 걸어놓고 대통령퇴진 시국미사를 드렸습니다. 미사의 성체성사는 우리의 입장을 나타내기 위하여 거행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만약 교황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우친다면 이처럼 미사의 성체성사를 자신들의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반성서적인 짓거리는 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최근 수원교구에서 교황님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교구의 심포지움 주제로 삼아 정부사업을 반대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착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교황님은 절제없이 피조 세계를 사용하는 것도 안되지만 피조 세계를 손댈 수 없는 우상으로 생각하는 것도 적합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156쪽) 우리의 개인적 논리는 대부분 우리의 폐쇄적인 태도, 편견, 야망 등에서 생겨납니다. 우리는 그분 말씀을 들으면서 하느님과의 내적 친교 안에서, 서서히 우리의 개인적 논리를 마음에서 치우고, 그 대신 주님께 “당신의 뜻은 무엇입니까?”하고 여쭙는 기도를 익혀야 합니다.(144쪽)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지켜 본 제자 두 사람이 엠마오로 향하였을 때 이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도 절망과 비탄에 빠져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고난과 죽음을 겪고나서 부활하셨음을 알렸을 때 그들은 비로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 희망이 불타올랐습니다.(책 140쪽) 엠마오로 향하는 제자들이 주님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았듯이 언제쯤이면 사제단의 신부님들이 증오심과 시기심에서 벗어나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