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구 조욱종 신부의 글

 

정치적 판단, 신학적 판단

 

예수님의 피를 원했던 유다인들의 고발에 의해 마지못해 재판을 해야 했던 빌라도, 그는 이 문제에서 정치적 판단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정치적 의미의 왕이 아닌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정치적 판단으로 십자가형에 처했다. 한편 예수님을 고발한 가야파와 안나스 등의 유다인들은 정치적 권한이 없었기에 정무적 판단을 하고 있었다. 정무적 판단에는 유리한가, 불리한가의 기준이 놓여있다.

 

주교들과 신부들이 한국사회의 불의를 지적하고 정의를 호소하는 일들이 많다. 주로 성명서나 기자회견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신학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과 가르침에 따라 이 시대에 호소하는 것이다. 즉, 교회가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고 끝내 승리하는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교회는 이러한 신학적 판단에 근거하여 행동한다.

 

정무적 판단이 정치적 판단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듯이, 사목적 판단은 신학적 판단에 근거하여야 한다. 그런데 신학적 판단을 근거로 한 주교와 신부들의 사목적 행위를 정치적 판단이라고 몰아세워 정치사제라고 신문에 광고까지 내는 단체가 있다. 이름하여 ‘대수천’이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의 줄임말이다.

 

이들이 주교들과 신부들을 고발하는 행위를 보면 빌라도와 카야파가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세운 예수 수난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순교자 성월이다. 한국의 초대교회 신자들은 경천애민의 정신으로 세상 권력의 나라를 넘어선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며 피를 흘려 순교하였다. 그 피 위에 세운 우리 한국천주교가 아니던가! 시복자들의 시성을 앞둔 우리 교회가 다시 제대로 된 순교문화를 세워나가야 할 때이다.

 

 

부산교구의 조욱종 신부님의 글에 대하여 답합니다

 

우선 여러 가지로 작문하시느라고 조욱종 신부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정치적 판단, 정무적 판단, 신학적 판단이라는 단어의 뜻이나 제대로 아시고 이런 글을 쓰시는지 저 자신도 의문입니다. 우선 빌라도가 정치적 판단으로 예수님을 십자가 형에 처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제 생각으로는 빌라도가 만약 현명한 총독으로서 제대로 된 정치적 판단을 했다면 예수님을 풀어주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부님도 쓰셨듯이 예수님은 정치적 의미의 왕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신부님이 옳게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바르 코크바나 바라빠처럼 정치적 투쟁에 참여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4항 참조) 오직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말씀하셨고 원수마저도 사랑하라고 제자와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원수마저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사랑이 널리 퍼졌더라면 기원후 70년 경 발생한 유다인의 처절한 항쟁, 로마제국에 의한 유다의 처참한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해방신학을 주장하는 함세웅 신부같은 분은 제3세계에서 그리스도교가 사랑과 용서를 전함으로써 식민지 국가 원주민의 지배계급의 압제에 대한 투쟁의식을 약화시켰다고 말합니다. (함세웅 신부 저 ‘해방신학의 올바른 이해’참조) 해방신학에서 정치적 투쟁을 촉구하는 이론은 신학적 판단입니까? 아니면 정치적 판단입니까? 유다인이 정치적 권한이 없었기에 정무적 판단을 하였다? 참 지나가는 개가 웃을 노릇입니다. 정치적 권한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정무적 판단을 합니까?

 

주교회의에서 신학적 판단에 근거하여 사목적 판단을 내린 것을 정치적 판단으로 몰아세우는 경우가 있다면 아마 다음과 같은 경우일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가상의 경우이지만 정부가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때 주교회의에서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천부의 것이며 태아는 귀중한 생명이므로 낙태를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발표합니다. 그런데 대수천이 (아니면 다른 단체이든) 이를 특정 정치세력의 주장과 같은 편향적인 발표라고 말하면서 정치적인 판단으로 몰아간다면 분명 이는 신학적인 판단을 정치적 판단으로 몰아가는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은 무고한 김정일을 억울하게 테러범으로 만들었다고 하면서 김현희가 가짜라고 주장하였고, 6•25 전쟁 이후 한반도 적화야욕을 한순간도 버린 적이 없는 북한에 대하여 무장해제나 다름없는 국가보안법 폐기를 주장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영해를 수호하기 위한 제주 해군기지를 집요하게 반대하고 천안함 공격, 목함 지뢰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을 부정하고 NLL을 부인하고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정당화하였습니다. 정부가 행하는 모든 국책사업, 새만금, 4대강 개발, 영월동강 댐, 원자력발전소, 고속철 천성산 터널, 사패산 터널, 밀양송전탑 건설 등에 반대하였고 시국미사에서 국가원수에 대하여 저주와 막말을 퍼부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떤 신학적 판단에 근거한 것인지 조욱종 신부님께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주교와 신부들이 한국사회의 불의를 지적하고 정의를 호소하는 것이 신학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글쎄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주교와 신부들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모두 ‘진영논리’, 즉 정치적인, 그것도 대단히 편향되고 치우친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봅니다. 우선 이들의 모든 주장이 어떤 정치그룹의 주장과 붕어빵입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주장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은 보수 여당이 주장하는 것을 일부나마 원용하고 나머지 80퍼센트는 야당의 주장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100퍼센트, 진보, 종북좌파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저희 대수천은 거룩한 미사의 강론 시간에 잡스럽고 편향된 정치적인 강론으로 신자들의 분심을 자아내는 신부님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시고 성직자 본연의 사명에 충실해주십시오.’ ‘편향적이지 않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십시오.’, ‘교회의 보편적이며 영성적인 말씀을 전해주십시오.’라는 말씀을 계속 드려왔습니다. 이런 대수천의 발언이 어떻게 신학적인 판단에 근거한 신부와 주교의 발언을 정치적으로 몰고 가는 것이 되는지 설명해주십시오.

 

정의구현사제단이 요즘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복음의 기쁨 183항입니다. “정의가 모든 정치의 목적이라면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만약 진정한 정치가 공동선을 위하고 정의를 위한 것이라면 정치적 판단 역시 정의를 위하고 공동선을 위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대수천의 신자들은 단지 정치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제단의 신부님들을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이 분들의 주장이 교회의 보편적인 가르침에 어긋나며 편향적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조욱종 신부님도 과거 국가보안법 폐지촉구, 국정원 해체, 대통령 사퇴 등의 시국선언에 동참하시면서 여러 가지 편향된 정치적인 주장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어떠한 신학적 판단에 근거하신 것인지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수난받고 돌아가신 것은 빌라도의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당시 유대인이 폭동을 일으낄가 두려워하는 일시적인 상황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정구사가 일으키는 모든 갈등의 근원은 자신들의 주장을 유리하게 끌고 가고자 하는 상황적 판단 때문입니다.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좌파진영의 어떤 주장은 신학적인 판단에서 옳고 어떤 것은 신학적으로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 유리한 주장, 종북좌파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주장, 보수에게 불리한 것들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오늘날 정의구현사제단의 행태입니다.

 

이들은 해방신학에 근거하여 평신도들을 사회변혁을 위한 홍위병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강론시간에 가진 자에 대한 증오심을 부채질하고 사회변혁을 획책하는 정치강론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면서 사제의 정치개입이 하느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며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 강변하여 왔습니다. 심지어는 대전 신학대학의 김유정 신부같은 분은 ‘북한에서는 종교가 정치에 개입할 수 없다. 그러니 사제의 정치개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바로 종북이다‘라는 기상천외한 논리를 개발하였습니다. 북한에는 종교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수령 유일신의 사회가 북한입니다. 이러한 사제들의 반국가 행동에 반발하여 평신도들이 일어나 자발적으로 대수천을 결성하자 이들은 대수천을 눈에 가시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든지 평신도들을 혁명의 전위대로 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대수천의 힘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수천을 음해하고 있습니다. 그 음모극의 일환으로써 대수천이 성직자들의 신학적 판단을 정치적 판단으로 몰아가면서 의도적으로 곡해하고 있다고 신자들을 선동하는 글을 조욱종 신부님께서 위에 쓰신 것입니다.

 

조욱종 신부님, 다 부질없으며 어리석은 짓입니다. 편향되고 교회의 보편적인 가르침과 맞지 않는 신부님들의 강론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불만을 품고 있는지 아십니까? 신자들은 중세시대처럼 전혀 글을 깨우치지 못하였던 어리석은 대중이 아닙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다년간 경험과 이론을 쌓아올린 전문가들이 대다수입니다. 540만 평신도 중 주일미사에 참여하는 신자가 120만명에 불과합니다. (2015년 6월 주교회의 발표참조) 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그러면서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순교자 성월을 입에 올리시며 시복자들의 시성 운운 하고 계시는데 신부님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순교자 중에 가장 영웅적인 치명을 당하셨던 정하상 바오로 성인께서는 천주가 계신 근거가 세가지이니 하나는 천지만물이요 또 하나는 인간의 양심이요 마지막은 수천년 성교회의 역사가 기록된 성경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 23세 교황님은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인간에게는 하느님께서 내면에 심어주신 질서가 있는데 이것이 양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더 없이 훌륭한 지혜가 바로 인간의 건전한 상식입니다.

 

국가정보원 몇몇 직원의 정치성 댓글 100여편을 빌미로 ‘총체적 관권부정선거’를 외치며 전국을 떠돌면서 대통령에게 온갖 저주와 욕설을 퍼붓고 하야를 주장하는 사제들이 과연 제대로 된 양심과 건전한 상식을 지닌 성직자라고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겠습니까? 조욱종 신부님,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인터넷에 달린 댓글은 어림잡아도 천만건은 넘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댓글 백 여편이 선거결과를 바꾸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신부님은 댓글 보시고 지지후보를 바꾸셨습니까?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에 대하여 ‘창에 찔린 그분의 심장에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흘러 내립니다. (요한 복음 19,34 참조)’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요한 1서 4,16)라고 기록된 복음서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사랑의 사도’로서의 사제들입니다.

 

신부님은 ‘예수님이 자신의 피를 원했던 유다인들에 의하여 고발되었다’고 글의 처음에 쓰셨습니다. 그리고 주교들과 신부들을 고발하는 행위를 보면 빌라도와 카야파가 생각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부님, 빌라도와 카야파처럼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십자가의 고통을 지금 더해주는 사람들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들의 증오심, 미움, 분노는 바로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강론대에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면서 기득권층에 대한 응징과 보복을 하느님의 이름을 걸고 공언하는 사제들의 강론에서 많은 평신도들이 충격을 받고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증오심과 미움이 만연할 때에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위하여 재림하실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증오심을 표출하면서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끝없이 조장하는 사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지 않을까 두려워집니다.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나는 너희들을 알지 못한다. 악인들을 위하여 마련된 영원한 유황불속으로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