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타살(他殺)」 아닌「자살(自殺)」어디 있겠는가?
  송정숙 글라라 / 서초동 성당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자살이 전해진 이튿날 서초동 천주교회의 미사를 집전하던 젊은 신부는 난감하고 침통한 얼굴로 『연예인과 유명인사의 자살 소식에 이어 전해진 전직 대통령의 자살 소식이 얼마나 잘못된 영향을 이 땅에 미치겠는가?』에 대한 탄식과 우려를 깊이, 깊이 강론으로 되새겼다.
 이것이 아마도 자살을 죄악으로 여기는 가톨릭의 정통한 해석일 것이다.
 5월 31일은 가톨릭교회가 정한 「생명의 날」이었다. 이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은 담화를 발표했다.
 그 담화문은 우리 사회에 드리운 「죽음의 문화」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 만연된 「자살」에 대하여 심각한 걱정을 하고 있다.
 『…자살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자살은 하느님께서 선사하신 귀중한 생명을 거부하는 중대한 행위이자 하느님의 주권(主權)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라며 절절하게 이어지는 이 담화문에는 자살의 부당성에 대한 종교적 해석이, 천주교 신도가 아니라도 깊은 사려를 깨닫게 하는 말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같은 가톨릭사제복을 갖춰 입고 봉하 마을에서 5월 28일에 위령 미사를 지낸 일단의 「정의 구현 사제단」을 대표한 신부의 논리는 아주 희한했던 것 같다. 한국 가톨릭의 생명 사상과는 너무도 상반되는 수사학이다.
 『…도심이나 고요한 산골을 가리지 않고 도도하게 이어지는 추모 물결과 이 땅 구석구석 높이높이 피어오르는 분향의 향기는 부활 승천의 저 장엄했던 장면을 상상하게 해준다.』고 신부는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저 장엄했던 장면」이란 주님 승천의 장면을 뜻한다. 이 신부는 예수 승천과 「노무현의 승천」을 같은 감동으로 해석한 것 같은 오해를 받는 일에 저어함이 없을 만큼 이 「자살」의 뜻을 승화시키고 싶어 한 것 같다.
 그래서 『당신(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후에서 투신과 봉헌의 의미를 깊이 깨달았다. 고맙다』고 했으며 『생전 당신께서 보여주신 희망과 또 놀랍게 마련해주신 새로운 희망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도 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희망』이란 무엇일까. 고 노무현 씨의 투신자살에서 얻는 「새로운 희망」이 대체 무엇일까.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부활과 승천을 믿음 생활의 절정의 날로 기린다.
 승천하시는 그 분의 영광을 생각하면 사람인 우리의 왜소하고 천박한 삶이 부끄럽고 연민 스럽게 느껴져 더운 눈물이 치솟는 경험을 나는 번번이 한다.
 
 나는 신도로서는 얄팍하고 게으르며 부실한 신앙인이다.
 세상에는 경건하고 성실하며 착실한 신앙인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 승천과 노무현이란 사람의 자살을 대비하며 거룩한 제단에서 감동을 외치고 「감사하다」고 소리치는 사제의 행동은 커다란 당혹감을 줄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며 명예와 이승 최고의 복락(福樂)을 누리던 사람이 그 나라와 국민에게 한마디의 사과도 기원도 없이 가톨릭이 가장 금기(禁忌)하는 「자살」로 마친 최후를 이렇게 감동으로 예찬하고 미화한 것은 이 땅의 5백만 가톨릭교도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혼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정의구현」에 도움을 주는 것일까.
 그들은 이런 전제를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므로 구원의 여지가 있다.』고.
 
 외부 요인의 압박 때문에 선택한 자살이므로 그것은 「타살」이라는 궤변(詭辯)이 성립된다면 기왕에 일어난 자살이나 앞으로 일어날 자살이 「타살」 아닌 것이 있겠는가. 더구나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이라는 언사(言辭)는, 그 일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집단이 소리 높여 활용 중인 검증 안 된 말이다.
 
 목회자는 어떤 영혼이라도 구원해야 한다. 특히 사제가 하는 일은 그 일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알아보고 그 뜻을 이뤄내는 일을 사명으로 부여받은 것이 사제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영혼에 어떤 구원이 적절하고 합당한지를 그것을 위해 어떤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지를 목회자들은 고민하고 애쓴다. 그것이 신의 뜻일 수 있는지 아닌지를 헤아리는 일도 사제는 해야 한다.
 하루 전날까지만 해도 「노무현의 구정물」이 자기들에게 튈까봐 길길이 뛰던 사람들이 표변하여 조문 정국의 이익을 차지하려고 온갖 목불인견(目不忍見)한 추태를 부리는 세력에 얹혀서 이상한 언사를 빌어가며 성사를 집전하는 모습은 다른 누구보다, 믿는 이들이 감내하기 힘들다.
 「생명의 존엄성」을 그토록 강조하는 한국 천주교의 본령을 이끄는 분들도 이 감내하기 힘든 신도들의 심정을 헤아려주었으면 좋겠다.